주산지를 가는 길에 본 이정표,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이곳을 지나칠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사정상 다음으로 미루기를 서너차례 지난 토요일 그 곳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이 저에게 특별햇던건 저의 본관이 평산신씨이기 때문일겁니다. 뭐 뿌리를 찾아 가는 기분이였달까요? 하지만 그곳을 다녀오고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찾다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본관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
지금까지 제가 평산신씨 장절공파 37대손으로 알고 있었는데 찾다보니 평산신씨의 종파엔 장절공파는 없다고 하네요.ㅠㅠ평산신씨의 시조가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인데요. 이 분의 호가 장절공이지 장절공이라 등록된 파는 없다고 합니다.그런데 이렇게 잘못 알고 계시는 분이 꽤 있다는 것도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이 이야긴 이것으로 접고..

판사공파 종택은 평산신씨의 집성촌인 청송 중평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을이 아담하고 조요한 곳이더라구요. 이 마을에는 종택말고 두 채의 고택이 더 있는데 종택의 왼편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다란 흙담장안에 자리하고 있는 판사공파 종택은 8세기 초반에 지어졌다고 해요. 신숭겸 장군의 15대손인 신득청 선생을 중시조고 모시고 있는 평산 신씨 판사공파는 조선전기 이후 진보면 합강에서 살다가 임진왜란 후 종가를 비롯한 일족들이 중평으로 옮겨와 지금의 자리에 종택을 세웠다고 합니다. 불훤재 종택이라고도 불리는데 구조상으로는 조선시대 사대부가를 대표하는 주택양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솟을대문 옆에 좌우 행랑과 곡간을 두고 있고 넓은 안마당에 ㅁ자형의 안채, 별채,정자,사당,영정각을 갖추고 있는 규모가 조금 되는 저택입니다.



나즈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종택
조용하니 그 옛날 선비들이 글을 읽기에 적당할듯합니다.
사진 왼편으로 올라오는 저 연기는 서벽고택에서 올라오는 군불연기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데 서벽고택에는 사람이 살고 계시더라구요.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하장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집의 맨 위쪽에 사당이 자리하고 왼편으로 영정각이 있는데요.
영정각은 새로 올려진듯 보였습니다.




종택을 나와 서벽고택으로 가던 중 잠시 돌아본 고택의 모습





고택에서 어르신께서 군불을 때고 계시더라구요.



다가가 인사를 드리니 괜찮으니깐 안에 들어가 구경하라고 그러시더라구요.


이 가옥은 마을앞의 얕은 산을 배경으로한 동남향의 집으로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장군의 후손인 신한창이 분가하면서 지은 5칸 규모의 세간집이였는데요. 그 후에 증손인 신치구가 영조15년에 확장, 증축하엿고 신한창의 서벽이라는 호를 따서 서벽고택이라 칭하였다합니다.가옥의 구조는 정면6칸,층면 4칸의 ㅁ 자형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집안에 이렇게 수도가 있는데 이런 구조는 처음 보는듯합니다.
저희 옛날집은 마당에 수도가 있었는데 말이예요. 꽤 흥미로웠습니다.

안에서 설겆이를 하고 계시던 이 어르신.나름 눈썰미가 있어요.
대문밖에서 뵙던 분이 학생이냐구 물으셔서 대답을 하려는 순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뭘"이라 하셔서 무안했던...





서벽고택 왼편에 있던 사남고택
이곳은 고택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옆쪽에 새로 또 집을 지으시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시더라구요.



이 가옥은 신숭겸의 19대손인 신치학이 1780년경에 지으셨다고 합니다. 조금전에 보았던 서벽고택과 종택등과 비슷한 연대에 지어진걸로 추정이 되는데 이 가옥의 특징은 사랑채의 기단을 높게 조성하여 누각처럼 보이게 하였고 팔각지붕을 높게 올려 마치 독립된 별도의 건물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반 살림집으로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 합니다.

고택을 들어서려는데 대문옆에 있던 멍멍군이 어찌니 짖어대는지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마당을 나서 담장끝에 서서 잠시 고택을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비가 그친 고택마당에서의 오후는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또 숙연해지기도 했구요. 뿌리를 찾아서 떠난 평산  신씨 판사공파 종택,저에겐 매우 특별한 여행이였습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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