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엄마의 생신도 정작 본인은 불편한 자리였다. 언제부턴가 자식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엄마의 생신은 시골집이 아닌 서울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되었다. 올해도 엄마의 서울은 낯설음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탁탁한 서울공기와 높이 솟은 고층빌딩은 엄마에게 불편한 듯하다. 엘레베이터 사용법을 몰라서 이런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신다.올해의 생신은 갈비집에서 하였다. 간만에 모인 자식들이 대견한듯 바라보시는 엄마의 모습을 뒤로하고 자식들은 제자식 챙기기에 바쁘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자들은 어른들의 술자리를 피해 가게 앞에서 앉아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때는 할머니를 잘 따르더니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불편하게 행동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엄마의 생신잔치?는 끝이 났다. 서울 올라 온 김에 며칠 더 있다가라는 자식들의 말에 엄마는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날 아침 고향으로 내려 가셨다. 당신 자식들 집에서 조차 불편함을 느끼시는 엄마의 모습을
뵈니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든다. 정작 본인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다 주시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 같아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도 난다. 당당하게 해달라 하셔도 될텐데 말이다.
자식 잘못된게 본인 잘못인듯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신다.아직도 더 주실게 남으셨는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를 건네 주신다. 되었다해도 막무가내다.
집에 와 열어보니 김치랑 사과 깨소금 상추 이것저것 많이도 싸셨다. 자식 가는길 더 보겠다고 차가 출발했는데도
그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룸미러에 보인다.
엄마는 내가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자리에서 내쪽을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옛날 형들이 집에 왔다갈때면 항시
그러했으니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에 와 중학교때 적어 놓은 어머니에 대해 적어 놓았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아버지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엄마는 항상 해가 뜨기 전 밭에 나가셔서 어두워질때까지 일을 하셨다.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때도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팠었다.


Posted by 하늘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