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란 성군의 이름을 조금 더 친근하게 해 준 뿌리깊은 나무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이지 싶습니다. 역대 임금 중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는 인물인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한글창제를 앞두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린 드라마이지요. 소설이 원작인지라 탄탄한 구성은 물론 주,조연들의 명품연기는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극대화시키는거 같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드라마가 주는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거 같습니다. 역사 속 인물들을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거든요. 뿌리깊은 나무 이전의 세종이 그저 바라볼 수도 없는 높은 나무였다면 지금의 세종은 시골의 마을에 있는  큰 나무가 그러했듯 , 여름 한 철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누구나 가까이 하는 그런 나무가 된거 같습니다. 이는 세종뿐만이 아니라 성상문이나 박팽년도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귀여운 옆집 아는 사람처럼 가까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드라마 속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하는거 같은데요. 세종으로 분한 한석규분의 연기는 근엄하게만 보아오던 세종을 너무나 평민스럽게 잘 보여주고 있는듯 싶습니다. 카리스마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장혁과는 대조적으로 편안하면서도 그 속에 품고 있던 히스테리컬한 모습까지도 잘 표현해 내는 것이 연기가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느껴지게도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옆에서 잘 하고 있는 장혁의 연기에 헛점이 보여지게 하는거 같기도 해요.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서 다소 오버하고 있단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사극이 주는 또 다른 장점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거예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세종의 본명이 이도라는 걸 뿌리깊은 나무를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또 다른 성군 정조의 본명이 이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왜 조선시대 임금의 이름자가 모두 외자일까 였습니다. 

왜 조선시대 임금의 이름자가 모두 외자일까요?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거의 모든 임금이 외자로 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름에는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사용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왕위에 오른 임금의 이름자는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인데,만약 많이 사용하는 글자, 혹은 두 글자로 이름을 사용하면 일반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제한되기 때문에 이름을 외자로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조선의 모든 임금이 외자를 사용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그리고 단종( 이홍위), 고종( 이명복,이재황)은 두 글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도가 잠들어 계신 곳, 영릉을 가다.
세종대왕릉에 들어서면 우측에 제실이 보이는데요. 제가 간 날은 이곳에서 영릉의 사계란 주제로 사진 전시가 있었습니다.새로운 볼거리였습니다. 제실의 앞쪽에는 세종전이 있는데 한글창제와 관련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촬영이 불가하여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대신 세종전앞에 있던 천체관측기구들은 마음껏 담을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의 또 다른 업적은 과학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일텐데요. 세종시대에 개발된 과학기구들이 세종전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천대
조선시대 천문관측대로 일명 간의대 첨성대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조선 초기에는 왕립 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을 2곳에 두었는데 특히 세종대왕은 경복궁안 서운관에 대간의대,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소간으대를 설치하고 관원들로 하여금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도록 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임진왜란 때 모든 관측시설이 불타버려 숙종14년에 다시 관측대 2개을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보물 제 851호 관천대이며 이곳의 관천대는 그것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홍천의
홍천의는 혼의 또는 선기옥형 이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천체위치측정기로서 일월오해성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쓰였던 천체관측기기라합니다.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 19년에 제작한 해시계의 하나


현저일구
세종 19년에 창제된 일종의 해시계로서 남북을 잇는 가는 줄을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도록 추를 달아 팽팽하게 당기도록 설치하여 이 줄의 그림자를 둥근 시반에 나타나게 하여 그 가리키는 눈금을 보고 하루의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라고 합니다.




천평일구
세종19년에 제작된 해시계


혼상
세종 19년 경복궁내에 만든 혼상은 오늘날 천구의와 같이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와 황도좌표의 각도로 둥근 구면위에 표기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천문기기입니다. 하지만 아쉽게 세종때 만들어진 혼상은 현존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홍살문을 지나 능을 향해 걸어갑니다.


능을 오르는 계단
잠시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능앞에 있었어요. 단체여행을 오신 분들이 능앞에 모여 앉아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계셨습니다.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서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라고 해요. 



이곳에는 세종의 능뿐이 아니라 효종의 능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효종의 능으로 가는 산책로가 꽤 잘 되어 있습니다.그래서인지 가볍게 산책을 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여럿 있더라구요.소나무와 참나무가 잘 어우러진 멋진 길이였습니다. 참나무의 단풍빛이 은은하니 아주 좋았구요.


드라마를 통해 예전보단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임금, 세종
실제의 세종이 드라마 속에서처럼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였을진 모르겠어요. 그 누가 알겠어요. 그 시대를 같이 살지 않은 이상,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의 속도 모르는게 현실인데 말이예요. 하지만 드라마로 인해 모르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뿌리깊은 나무가 주는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까싶네요.그것이 비록 허구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말이예요.

그동안 수없이 공부했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정확히 남아 있지 않았던 세종의 위대한 업적,영릉을 통해 다시금 새기게 되는 좋은 여행이였네요. 다시 한번 세종의 위대한 업적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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