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엔 우리집에서 200m떨어진 곳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중학교다니는 형들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해야 하는 집안 일들 중에 하나가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이였습니다. 중학교다니던 둘째형은 오늘도 우물에 다녀 옵니다. 자기 몸과 비슷하던 지게를 지고 비탓길을 올라오다보면 양동이의 물은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작은 체구에 물의 무게가 버겁고 비탓길을 오르다 보며 양동이의 물은 밖으로 다 튀어나와 형이 지나간 자리엔 둘 줄기의 금이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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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번도 이 지게를 져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형나이가 될때쯤엔  각집마다 개울 수도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물지게도 자연히 없어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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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을 이맘때쯤이면 마당 한가운데는 탈곡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기계로 하지만 그때는 이걸로 추수를 하였습니다. 옆에서 있는 나를 불러다 엄마는 옆에 세우고 같이 수수를 털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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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싫어 잠깐 하다가는 아이들과 놀기 위해 도망을 치기도 합니다.그때 초고급의 놀이는 딱지와 구슬치기였습니다. 다른 놀이야 강가의 돌멩이(비석치기) 아니면 뒷산의 작은 가지(자치기) 였지만 딱지와 구슬은 돈을 주고 사서해야 하는 놀이였습니다.여자아이들은 당연 아래 사진의 종이 인형이였습니다. 돌멩이와 나무로도 즐거운 놀이가 되었으니 그때는 참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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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촌스럽고 아이들도 갖고 놀지 않은 물건이지만 그때는 저 인형들은 집안을 꾸미는 최고의 악세사리가 아닐까합니다. TV가 없던 시절에는 없었지만 TV가 생기면서 자연히 그 위를 장식할 인형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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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생기기전 아버지의 오락거리는 단연 라디오였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보면 아버지는 이 라디오를 가지고 주파수를 맞추려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잘 나오다가도 안나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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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전화가 하나밖에 없던 시절의 마을 공동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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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담배를 피기 위해 쓰시던 곰방대
제가 3살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때에도 저 담뱃대를 본 기억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도 저걸 사용하셨나봅니다. 제가 본 아버지의 담배피는 모습은 신문지에 잎담배를 말아 피우시던 모습이였는데......청자(?)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잎담배를 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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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를 보면 왜 어머니의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이면 장을 담그고 매일 같이 장독대를 행주로 닦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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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들에는 그리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담겨있습니다.
물건 하나 하나엔 어린시절 가족들의 땀과 손때가 묻어 있어 더 소중하게 생각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서로 바빠 얼굴 볼 기회도 적지만 그때는 가족들이야말로 나의 든든한 빽(?)이였습니다.
등치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형이 있어 학교에서는  제법 의시되기도 하고 엄마가 있으면 세상 부러울것이 없던 시절이였습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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