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를 즐겨 보는 편인데요. 드라마가 주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수업시간에나 들었던 역사적인 인물들의 다른 모습을 보는 재미도 특별한거 같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세종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성삼문이나 박팽년의 인간적인 모습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던거 같습니다.

박팽년사우를 가다
몇 주전 박팽년 사우를 찾았습니다. 박팽년은 대전 회덕 출신이고, 후손 집성촌은 대구에 형성돼 있는데요. 박팽년 사우는 아무 연고가 없을거 같은 충주의 신니면에 세워져 있는데요. 여기에는 나름에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박팽년의 부인은 천안전씨로 실록에 보면 그녀의 본명은 전옥금으로 역모사건 후 연좌제로 인해 정인지 집안의 노비로 팔려갔다고 합니다.그런데 그녀의 묘가 박팽년 사우와 매우 가까운 충주 주덕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요. 이는 그녀의 친정이 주덕이였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맞다면 박팽년은 일시적이나마 충주에서 처가살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아무튼 박팽년 부인의 묘소를 돌보기 위해 대구에서 문중 일부가 올라왔고 이후, 영조때 박팽년 사우가 이곳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충북일보에서-




작은 마을안에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정표도 눈에 띄는 것도 아니였구요.



사우에 도착하기 전 본 독특한 주차장
쌍둥이차량이(?)이 담쟁이 덩쿨사이에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에 들어서기 전 담장너머로 슬쩍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괜히 가슴이 떨리었다는..



정문은 닫혀 있는데요. 우측편을 돌아 뒤로 들어서면 일반 가정집 마당으로 사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 학사
뿌리깊은 나무에서 보면 유독 세종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 두명 보입니다.오늘의 주인공인 박팽년과 어찌보면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성삼문입니다.이처럼 박팽년은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였는데요. 박팽년은 태종17년인 1417년에 출생하여 세조2년인 1456에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순절한 조선 초기의 문신입니다.

성삼문과 더불어 일찍이 집현전에 발탁되어 임금에게 총애를 받았고 17세인 세종14년에 생원이 되고 2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47년에는 중시에 합격하여 학문이 뛰어난 사람에게 준 사가독서인 호당에 선발되었다고 하네요.드라마에서처럼 박팽년은 과문한 사람이였다고 전해지는데요. 성품이 침착하며 말수가 적고 소학에 나오는 예절대로 실천하여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아서 의관을 벗지 않아 사람들이 존경에마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박팽년은 집현전의 유망한 젊은 학사들 가운데 학문과 문장, 글씨가 모두 뛰어나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인데요. 박팽년은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을 부탁받았던 고명 신하 중의 한 사람입니다. 문종은 병환이 나자 어느날밤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들여 무릎에 단종을 앉히고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면서" 내가 이 아이를 경들에게 부탁한다" 하고 술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문종이 왕의 의자에서 내려와 편히 앉아서 먼저 술전을 들어 권하니 성산문,박팽년,신숙주들이 모두 술에 취해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고 하는데요.


문종이 내시에게 명하여 방문위의 인방나무를 뜯어다가 들것을 만들어 차례로 메고 나가 입직청에 나란히 눕혀 주었다고 합니다. 그날 밤에 많은 눈이 왔는데 이튿날 아침에 술을 깨니, 좋은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고,온몸에는 담비털 갖옷이 덮혀 있었다고 하는데 문종이 손수 덮어준 것이였다고 하네요. 이에 그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임금의  특별한 은혜에 보답하기로 맹세 , 이들 중 박팽년과 성삼문은 목숨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했으나, 안타깝게도 신숙주는 세조의 편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 수업시간에 괜히 제가 나쁜 사람같고 뭐 그랬어요.저의 성이 신씨였는데 어릴땐 친구들이 이런걸로도 막 놀리고 그랬었거든요.배신자라고 TT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사우로 들어가 봅니다.




담벼락 아래에 피어나던 들국화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의 복위 운동을 계획했던 사육신 박팽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계유정난으로 변절자로 오명을 남긴 신숙주를 빼고(그때 이후 맛이 빨리 변한다고 해서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불렸다고..) 많은 집현전 학사가 유명을 달리하셨죠. 

사육신-단종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 (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유응부)
생육신-단종복위운동에 참여는 하지 않았으나 세조를 인정치않고 세조정권를 비해 벼슬을 하기 않고 은거했던 인물
           (김시습,남효온,원호,조려,성담수,이맹전)

이거 중학교 국사시간에 엄청 외웠던거 같아요.




역사적으로 이름이 있는 인물에 비하면 사우가 좀 소박했어요.
주변환경도 그리 좋지 못하고 초행길인 분은 찾기도 쉽지 않겠더라구요.




임금의 총애를 받던 학식이 뛰어난 학사에서 신하의 도리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받친 충신의 표본이 된 박팽년
그분의 사우를 돌아보면 그 예전 피가 흥건히 흐르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잠시 들여다 봅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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