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외국인선교사 묘지를 나오다보면 오른쪽으로 절두산 성지를 가는 길이 나옵니다. 머리가 잘려진 산 이란 뜻이니 무섭고도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곳인가 봅니다. 절두산의 원래 지명은 봉우리의 모습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하여 잠두봉이라 불리웠습니다.1866 병인박해때 선교사들의 사형집행지가 되면서 절두산이란 지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성당이라 씌여진 이정표를 따라 절두산 성지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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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앞엔 순교자의 모습이 새겨진 조각상이 있습니다. 돌 위에 누워 잠드신듯보입니다.
이곳에서라도 부디 편안히 잠드시길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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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뒤에 이렇게 순교자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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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에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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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세워지면서 함께 세워진 순례 성당 지하실에서는 성인 28인의 유해를 모신 성해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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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1866년 9월고 10울 두차례에 걸쳐 침입을 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신앙의 자유는 없었지먼 프랑스에서 입국한 선교사들에 의해 천주교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자들은 교통과 군사의 주요한 땅인 이곳 양화진이 서양의 세력에 의해 더렵혀진 것이 천주교인들 때문이니 천주교인들의 피로써 오욕을 씻고자 이곳을 천주교인들의 사형 집행지로 택하여지게 됩니다. 1866년 10월22일 황해도 사람으로 시흥 봉천동에서 잡혀온 이의송과 그의 아내 김엇분 아들 붕익이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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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동굴
1858년 성모님이 프랑스 루르드동굴(마사비엘) 발현하신 것을 기념하여 세계각국에 마사비엘을 보딴 동굴이 만들어집니다. 절두산의 성모동굴은 1978년에 만들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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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절두산의 옛 이름이 가을두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강변의 명승지로 그 풍경이 뛰어나서 문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중국 사신들이 오면 빼놓지 않고 다녀갔을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신앙심을 갖지 않은 분이라도 이곳에서 시원한 한강의 바람을 쐬어봐도 좋을 듯합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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