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을 따라 걷는 과거로의 여행, 안동 내앞마을
안동의 내앞마을은 영남 사대길지중의 한곳으로 마을 앞에 흐르는 반변천이 있어 내앞이란 지명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의성 김씨의 동족마을로 형성돼 5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곳으로 16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학봉 선생이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는 의성김씨 종택은 보물 제450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뿐만이 아니라 마을 곳곳에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즐비합니다. 특히 이 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운동을 지원한 애국지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도 유명하고요.




비교적 큰 주차장이 마을입구에 있는데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듯 텅 비어 있더라구요.
주차장옆 쉼터도 꽤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마을에 즐비한 고택을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겉에서 보기엔 작다 생각되는 마을이였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생각하는 것보다 크기가 작진 않습니다.




오래된 한옥과 토담사이를 걷다보면 어느새 여행은 과거를 향해 나아갑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이 한옥은 아니지만 토담사이의 한옥의 기와지붕은 조선시대 그 어디쯤에 서 있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대문의 나무결 또한 예사스럽지 않았던 내앞마을
대문안으로 보이던 독특한 집
옛것과 새것을 적절히 잘 조화시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이 몽선각이란 정자인데요.
문이 닫혀 있어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담장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더라구요. 




몽선각은 조선조 후기 월탄 김창석선생의 정자입니다. 월탄공은 이곳 내앞 입향조이신 청계 김진대조의 6대손으로 내앞에서 태어나시어 숙종8년에 문과에 급제하셨다고 합니다. 승문원부정자,제원찰방,아계찰방,강원도사,성균박사,사간원 정언등에 오르셨다 갑술정변으로 노론이 집권하면서 시국이 일별하자 벼슬을 그만두시고 낙향하시어 뛰어난 소질을 갖고 계신 시서화에 몰두를 하였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곳곳에 현판글씨가 남아 있으며 8폭의 병서는 한국문화진흥에 7폭의 도산서원전도는 연세대 도서관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초 몽선각은 선생이 어느날 밤에 중국의 문장가 소동파와 교유하며 즐겼던 꿈을 꾼후 1968년 망천리 망월산 남쪽 반변천 바위위에 지으셨는데, 선생이 작고한 후 세번의 대홍수로 정자가 유실되는 안타까움을 겪은데다가 인하댐 건설로 수몰되자 1988년 선생의 9대손 시탁공이 월탄종택뒤 종군봉을 등진 이곳에 중건하였다고 하네요.







의성 김씨 귀봉 김수일의 종택
보물로 지정된 의성 김씨 대종택은 또 따로 있습니다.




집앞에서 콩을 털고 계시는 어르신이 계시던 이곳은 제산종택



제산종택
이집은 조선 후기 학자인 제산 김성탁이 18세기 초에 지어 거주한 살림집이며 종택 오른편에는 1718년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한 우곡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성탁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문장가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1728년 이인좌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글을 지어 난의 진압에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네요.



집앞에 걸려 있는 메주가 인상적인 가옥



이 마크는 참 오랫만에 보는것 같아요.
예전에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때 아버지께서 이런 마크가 달린 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예요.




대문도 독특하고 마당도 예쁘게 잘 꾸며 놓았던 집







34번 국도를 달리다 우연히 들른 곳이였는데 일부러라도 찾아가도 좋을만큼 꽤 괜찮은 곳이였습니다.
즐비한 마을의 고택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만들어 주는 곳, 안동의 내앞마을이였습니다.





Posted by 하늘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