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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민속촌전체에 꽹과리소리가 요란하다. 어디선가 농악공연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바쁜 걸음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나섰다. 그곳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빙둘러 자리잡고 있었다.보는 사람들은 꽹과리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고 그들과 관광객은 한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몸에 어쩔수 없는 우리정서가 녹아 있나보다. 외국댄스음악을 듣고 자란 나의 몸에도 농악에서 들려오는 신명나는 장단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
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단연 상무돌리기다 넘어질듯 말듯 몸을 돌리는 모양에 숨을 죽이다 그것을 완성하고 나며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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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 징 장구 북의 4가지 타악기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태평소 나발의 타악기와 버꾸등이 곁들어지는 농민음악을 농악이라 하는데 원래는 굿을 가리키는 말로 민간사회에서는 굿 매귀 풍장 풍물 두레등 지방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농악은 고대인들의 축원 형태로 나타난 제천의식에서 볼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주조술이 발달한 신라에서 쇠와 방울을 만들어 두레농악인 도솔가를 지어 놀았다고 한다. 이때 꽹과리 소리를 흉내낸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꽹과리 두레소리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농악의 기원설은 3가지가 있다. 첫째 전통사회의 각 촌락마다 형성되었던 두레를 중심으로 파종과 추수를 신에게 축언하고 그해 농가의 평안을 비는 음악이었다는 점에서 풍농 안택기원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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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농민을 반농반국의 제도로 조직하여 농군으로 훈련시키고 유사시에 군인으로 징집하여 쓴 데서 군악과 관련된 농군악이었다는 군악기원설이 있는데 이는 농악놀이의 진법등에서 그 근거를 주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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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찰건립 중수 사답등을 장만하기 위해 화주승이 다른 중들과 고깔을 쓰고 농악기를 들고 민가에 들러 걸립하던 굿중팽의 걸립음악이었다는 점에서 불교관계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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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추석이면 동네 어른들이 농악패를 만들어 마을입구에서 신명나게 노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한동안 그들만의 춤판이 끝나면 이집저집을 돌며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굿을 열며 밤 늦게까지 동네안엔 요란한 꽹과리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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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우리의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우리동네에서도 사라진지 20년 가까이 된듯도 싶다.
억지로 찾으면 찾아지겠지만 가수들의 공연이나 영화처럼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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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경험이였다. 너무 가슴뛰는 경험....
옛날 강부자의 오구란 연극을 볼때도 그러하였다. 평범한 연극공연에 실증이 나있을때 보게된 연극이다.
정동에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토속신앙과 현대적 공연문화를 적절히 잘 조화시킨 공연이였단 평가를 했었다. 공연을 보고 내 나름대로....^^ 지금도 어디선가 오구가 공연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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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흥겨운 농악패의 신명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였다.
어릴 적에도 가을 파란하늘과 동네 어르신들의 농악공연은 추석의 또 다른 즐거움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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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음악은 국립국악원에서 국민들에게 우리의 소리를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생활음악으로 선보이고 있는
음악입니다. 비상업용으로는 사용이 가능하다기에 살짝 업어왔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음악과 같이 보시면 사진의 저 사람들이 살아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이 가을 잊혀져가는 우리소리를 찾아 떠나 보시는 것도 좋을듯하구요.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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