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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수원향교를 갔다왔습니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안을  구경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장너머 높은 곳에서 안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소나무사이의 멋진 한옥들이 운치있는 곳이란 생각을 했습니다.그래서 더 안을 보지못한것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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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도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복사꽃잎사이로 대성전이 얼핏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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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향교는 1291년(고려 충렬왕 17년) 당시 수원의 읍 중심이었던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 화산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 후 1789년(정조13년) 가을 500년 가까운 세월을 화산앞 구읍지에 세워져 있던 것을 정조대왕이 부왕인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재의 화산으로 천장하기 위하여 수원읍지를 팔달산 동쪽 현재 4대문 안으로 옮길때 현재 위치인 교동43번지에 이전 건축하게 되었다.

처음 이전 당시에는 급히 서두른 탓으로 목재 대부분은 구건물의 것을 재활용하였으며 건물의 하부가 물에 잠기어 목재가 썩는 등 문제가 발생하여 1795년 개축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훼손되거나 화재로 인하여 수차에 걸쳐 보수하여 왔다.
향교는 성균관의 하급관학으로 일명 향학이라 불렸으며 지방에 유일한 공립중등교육기관으로서 수재를 모아 학문을 강습하여 왔다.

구조는 성균관을 모방하여 거의 비슷하게 선성의 위패를 봉안한 대성전이 있고 당하좌우에는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던 동.서무가 있어 이를 문묘불렀다.문묘앞에는 유생들이 학습하던 명륜당이 있고 그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하던 동.서재가 있는데 주로 동재에는 양반계급을 서재에는 그이하 계급을 기숙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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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서무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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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대편을 넘어와 명륜당의 모습을 찍어보았습니다.유생들의 천자문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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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와 명륜당의 고풍스런 기와가 잘 어울립니다. 한옥에는 향나무가 참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습니다.분홍빛 벚꽃도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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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꼭 안을 구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서보는 향교의 모습도 고풍스럽기 그지없습니다.



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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