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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에 다녀왔습니다. 이곳 모현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구전에 따르면 선생이 이성계 일파에 의해 피살된 후 시신이 다리 아래에 버려진 것을 스님들이 수습해 지금의 개성부근에 묘를 썻다 합니다. 이후 선생의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려 이곳을 지나려할때 갑자기 돌풍이 일더니 상여의 명정이 날아가 지금의 묘소가 있는 모현면 능원리에 떨었졌다합니다.

후손들은 선생의 혼령이 바람을 일으켜 자신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고 선생을 이곳에 모셨습니다. 이후 이 지역 대부분의 땅은 대대로 정 씨 문중 소유였습니다. 묘현면 능원리의 묘현이라는 지명도 선생의 어진 마음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죽전역에서 오면 차로 10분정도 서현역에서도 30분이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죽전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능원초등학교역 서현역에서는 교통편은 많지만 능골삼거리에서 내려 조금 걸으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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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전역에서 60번 버스를 타고 능원 초등학교 내려 이곳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내려 죽전쪽으로 조금오르면 서원길이란 이정표가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수풀이 우거진 사이로 서원의 홍살문 태극 문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분당에서 조금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곳에는 시골의 전원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길가 텃밭에는 고추가 영글어 가고 옥수수며 호박넝쿨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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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서원은 동방성리학의 시조인 포은 정몽주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서원입니다. 조선 선조 9년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져 선조 38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또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 졌다 1926년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마을 뒤쪽의 야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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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서원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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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진 외삼문 너머로 강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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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보는 우리의 단청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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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 너머에 사당이 있는데 지금은 복원을 위해 해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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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문 담장주위에 서서 서원을 둘러 보았습니다. 잔디의 초록빛이 빛나고 크게 자란 은행나무는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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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앞으로 마을의 모습도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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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서원은 강당과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서원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입니다.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 소담스런 분위기는 있는동안 차분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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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경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생의 묘소를 다녀갔었습니다. 그때 이곳을 못보고 간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드디어 오늘 다녀 가게 되었네요. 잔디가 자라지 않는 땅에 제 족적을 꾸~~욱 남기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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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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