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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의 큰 길 우측편에는 조선시대의 지방관청인 동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에는 그때의 모습을 일부 재현에 놓은 공간이 있습니다.대문을 지키고 있는 나졸이며,군수앞에 끌려온 죄수등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 또한 낙안읍성의 또 다른 볼거리인거 같습니다.하지만 별 의미없어 보일거 같은 이 모형속에는  슬프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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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앞에 서 있는 나졸들을 지나 동헌에 들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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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어 끌려온 죄수를 심문하는 듯한 상황이 보여지는데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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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08년 마지막 군수가 폐군되던 당일 날 ,낙안군 옥사에 있던 죄수들을 풀어주기 위한 장면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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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낙안군의 마지막 군수는 일제에 의해 낙안군이 폐군 되는 것을 알았으며 머지 않아 일제가 낙안군을 통치하게 될 것이란 점도 미리 알고 있었기에 폐군되던 1908년 10월 15일 옥사에 남아 있던 10여명의 죄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석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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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너희들이 죄가 없어 석방하는 것이 아니다. 머지않아 일제가 낙안군도 통치하게 될 것인데 만약 지금 너희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일제도 너희들을 죄인 취급할 것이다. 너희는 조선의 죄인이지 일제의 죄인은 아니기에 석방하고자 한다"는 말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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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무렵,낙안군 옥사의 모든 문은 열리고 남아 있던 죄수들은 자유의 몸이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낙안군수가 자신들에게 얘기한 지금까지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남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서 그 빚을 갚으라고 한 것은 가슴속에 새기고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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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지만 2년 후 벌교장터에서 조선인 부녀자를 겁탈하려던 일본인을 때렸다는 이유로 일본헌병이 칼을 휘둘러 두 명이 죽게 되는데 그 중에 한명, 5년 후 낙민루 앞에서 일본인 지주를 살해했다고 총살을 당하는 조선인,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면서 가장 앞장서서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된 7명중에 4명이 놀랍게도 낙안군이 폐군되던 날 마지막 낙안군수에게서 석방된 죄수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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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길 듣고 다시보니 마네킹들이 다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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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겨울 밤입니다.
눈이 또 내릴것 같은 분위기네요.
이젠 지겹다!!! 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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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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