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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뎁조니뎁은 1963년 6월 9일에 태어났다.미국 켄터키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에서 성장한 그는 학교의 규율에 적응을 못하고우울한 시절을 보내던 12살 무렵 어머니께 받은 기타를 선물 받고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16살에  "The KIDS"라는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L.A로 활동무대를 옮기지만 밴드는 해체하고 만다.그 후 조니뎁은 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1984년 웨스 크레이븐의 공포영화 <나이트메어>로 스크린에 데뷔하였다.비록 프레디에게 죽는 단역이었지만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조니 뎁은 아이돌 스타 대열에 들어선다. 


하지만, 아이돌 스타이기를 거부했던 조니 뎁은, 90년 존 워터스 감독의 <Cry Baby>록에 열광하는 불량소년 역으로 영화에 복귀한다.그러나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시킨 영화는 단연 팀버튼감독과 작업한 가위손이다.니뎁은 자신은 블록버스터 배우가 되는 것이 싫다며 유명 시상식에 머리도 감지 않고 나타나는 특이한 마인드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딸을 위해 몸소 해적이 되기도 하고, 초콜릿 공장의 괴짜 공장장이 되기도 하는 자상한아버지이다.팀버튼감독이 최고의 배우라 칭송하는 배우유명감독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배우  그는 영화속에서 멋있게 보이려하지 않는다.그저 그배역에 몰입하고 캐릭터와 하나가 되려한다.영화속에선 결코 나서거나 튀려하지 않으며 하나가 되려고 한다.그런 면이 그가 최고의 배우로 인정되는 면일 것이다.나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어느 영화에서건 그는 영화 속 캐릭터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존 워터스

미국 컬트 영화를 대표하는 괴짜 감독.존 워터스 감독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기상천외한 영화들을 쏟아냈다. 코미디와 하드코어, 외설적인 상상력이 하나로 뒤섞인 그의 영화들은 자연스레 ‘컬트’반열에 올랐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대의 젊은이들은 존 워터스의 영화에서 미국 사회를 조롱하는 기발함을 엿보았고, 근엄한 기성세대들은 존 워터스의 영화에 ‘쓰레기’라는 수식어를 달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감독의 언급은 기발하다 못해 기막히다. “난 내 영화가 아무런 사회적 합의와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존 워터스 감독은 반골기질이 농후한 연출자이자 할리우드 변방에서 작업 하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괴짜다. 중요한 건 존 워터스 감독이 한번도 ‘거장’으로 분류된 적이 없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젊은 관객의 지지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존 워터스 감독에게 괴짜 이상의 그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다.



사랑의 눈물 (CRY BABY)

사랑의 눈물은 존워터의  1990년 작품으로 그가 이제껏 해온 외설적 상상력에 뮤지컬을 곁들인 매우 독특한 영화기법을 선사하는 작품이다.사랑의 눈물은 컬트 영화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가을 단비같은 청량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할 것이라 생각된다.또 하나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배우 중의 한명인 조니 뎁의 데뷔 초기 시절의 순수하고 반항기 어린 모습을 느끼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컬트영화의 귀재 존 워터스와 조니뎁의 만남조니뎁의 색다른 면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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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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